본문 바로가기
  •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만 즐겁게 살자.
국내 여행

여행 2일차/완도(신지명사십리 해수욕장,완도타워, 청해진,장보고 동상)

by 미소.. 2021. 5. 8.

5월2일 일요일

완도 신지 명사십리 해수욕장 주변 펜션에서 자고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나와보는데

"신지명사십리(薪智鳴沙十里) 해수욕장은 해수에 포함된 미네랄 등 기능성 성분이 전국에서 가장 풍부한 남해안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그 규모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도 매우 빼어난 곳이다. 모래 우는 소리가 십리밖까지 들린다 하여 『울모래』또는『명사십리』로 불리기도 하였다."

썰물 때라 물이 많이 빠지고 있었는데
광활한 은빛 백사장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넓고 울창한 송림, 주차장, 샤워장, 탈의실, 탐방로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연인 및 가족단위 피서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특히 여름볕으로 잘 달거진 뜨겁고 부드러운 모래로 하는 모래찜질은 어르신들의 퇴행성 관절염과 신경통에 미네랄이 풍부한 바닷물은 피부병과 피부 노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공기 비타민이라는 산소 음이온이 대도시의 50배에 이를 정도로 풍부하다. 또한 주변의 갯바위는 돔과 농어, 광어 등 어족자원이 풍부해 낚시터로 인기가 높다."
이렇게 모래사장을 거닐고 ...
완도 타워로 이동...
전날 야경을 보면서 대충 보았기에 다시 찾아온 완도 타워... 올라가 볼까
타워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좋았으나 사진에서 보듯이 유리창이...
공원으로 가 볼까
작약이 곱게 피어 반겨주고
완도 시내도 내려다보고
모노레일이 천천히 오르고
무화가로 만든 즉석빵도 먹어보고...ㅋㅋ
돈나무
이렇게 완도 타워를 돌아보고

*************************************************************************************************************

청해진 유적지로 이동...
청해진에 도착....조금 전에 가 보았던 완도 타워도 바라보고 앞으로 가 볼 오른쪽 장보고 동상도 바라보고

청해진 진입로에서 찍은 전경
828년(흥덕왕 3)에 장보고(張保皐)가 전라남도 완도 지역에 설치한 군사 · 무역 거점이다.
장보고는 중국의 해적이 신라인을 잡아 노예로 삼는 현실을 목도한 후, 신라로 돌아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방어할 것을 건의하였다.
흥덕왕의 승낙을 받은 장보고는 1만 명의 변민(邊民)을 규합하여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청해진 설치 후 장보고는 신라 서남해 지역의 해적을 소탕하였고, 적극적으로 대외무역에 참여하였다.
장보고는 당나라에는 대당매물사(大唐賣物使), 일본에는 회역사(廻易使)라는 명칭으로 교역단을 파견하였고,
교관선(交關船)이라 명명된 무역선을 통해 교역하였다. 장보고는 당 · 신라 · 일본을 연결하는 삼각무역의 일환인 중계무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그는 청해진을 근거지로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중국·일본과 활발한 해상무역을 전개했다. 청해진은 일종의 해상왕국이었다.
축적된 부와 군사력으로 장보고는 중앙정부의 권력전에도 관여하여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켰다.
그러나 딸을 문성왕의 차비로 들이려고 한 시도가 진골귀족의 반대로 무산되자 장보고는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고,
846년 자객 염장에게 살해당했다.
그뒤 청해진은 무역 활동이 이어졌으나 851년에 철폐되었다.
청해진의 위치는 완도 본도에서 170m 정도 떨어진 장도인데, 섬 둘레를 외성과 내성으로 축성한 흔적과 목책을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사적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청치에 개입하지 말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우리나라 무역이 더 발달되지 않았을까...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란...

청해진 외성문 앞의 대형 우물. 우물이 외성문 밖에 있는 것도 특이점이며, 우물 주변으로도 흙으로 성벽을 쌓았다.
외성문 : 성의 내외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유사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적을 역습하거나 격퇴하는 통로이다
이렇게 청해진을 돌아보고 장보고 기념관에도 가 볼까 하다가 몇 년 전 중국 여행에서 산동성 장보고의 적산법화원에서 자세히 봤기에 기념관 대신 장보고 동상으로 가 본다
"바다를 무대로 활약한 장보고대사의 해양 개척정신과 진취적인 기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오른손의 칼은 무인을, 왼손의 교역물품도록은 상인을 상징한 것으로 이는 군인이자 상인이였던 대사의 이미지를 형상화 한 것이다. 장보고는 완도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고 당나라로 건너가 30세의 나이로 무령군 군중소장이 되었으며, 산동성에 적산법화원을 세우고 중국각지에 형성된 신라방을 중심으로 경제공동체를 구성 자치영역을 확대하여 교포사회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828년(흥덕왕 3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권을 장악,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하여 동아시아는 물론, 멀리 아랍상인과도 교역하는 등 한민족 최초의 세계인이자 해양상업제국을 건설한 국제적인 무역왕이였다. 아울러,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한 청해진의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하여 한국, 중국, 일본과의 교역 네트워크를 구축 무역활동은 물론, 정치문화적으로도 큰 족적을 남긴 세계적인 해양개척의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다."
장보고 동상 전망대에서 청해진도 바라보고
실내 관람도 하고
밖으로 나와서 뒷모습도 찍어주고
완도 수목원으로 이동...

완도 수목원 사진은 2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