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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스페인여행 6일차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수도원, 구엘공원,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 야간투어

11일 금요일  호텔에서 뷔페로 조식을 하고

바르셀로나 근교 몬세라트로 이동(4시간 소요)  중식 시간 포함


호텔에서 조식을 하고  몬세라트로 출발 하는데 일출이 떠오르기에 찍어보고


몬세라트로 이동 중에 점심을 먹는데 점심 메뉴는 (하몬)... 그런데 내 입맛에는 안 맞아 빵만 먹고


하몬(Jamón)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하는 방식으로 숙성시킨 스페인의 전통 음식으로 장기간 소금에 절여 건조해 만든다.

특히 하몬 이베리코 데 베요타(Jamon Iberico de Bellota)는 도토리 나무밑에 방목해 키운 돼지를 사용해 최상급 하몬으로 인정받는다 고

우리가 지금 가고있는 몬세라트(Montserrat) 가 보이길래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어본다...  바르셀로나 시 북서쪽의 요브레가트 강 바로 서쪽에 있으며

로마인에게 몬스세라투스('톱니 모양의 산'), 카탈루냐인에게 몬트사그라트('신성한 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몬세라트역에 도착을 한다. 

몬세라트[Montserrat] ...바르셀로나에서 50 여 km 떨어진 몬세라트는 카탈루냐뿐만 아니라 스페인 전체에서도 유명한 가톨릭 성지라고 

자 ~ 그러면 산악열차를 타고 몬세라트 수도원으로 올라가 볼까... (투어 1인30유로)


산악열차를 타고 수도원으로 올라가면서 찍어보고


마을도 내려다 보기도 하고


차창밖 풍경에 빠져 사진 찍다 보니 수도원에 도착했네


산악열차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니


장엄한 기암괴석이 눈앞에 펼쳐 지는데


 깊은 협곡의 산기슭 위에 (해발 730m) 솟아있는 기암괴석과 함께 수도원이 있었는데


해발 730m 에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볼수가 있다니 순간 위대함이 느껴지고


몬세라티 수도원 성당 으로 들어가 볼까


몬세라티 수도원 성당 내로 들어가 보는데



소원을 한 가지씩은 꼭 들어준다는 몬세라 티 수도원 성당 내 2층에 흑색의 성모 마리아상이 저 위에 있는데

"동굴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이 검은 성모 마리아상은 880년 경 몬세라트 산 동굴 속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

검은 성모 마리아상은 아기를 안고 있었으며 오른손을 만지며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마리아상의 오른손을 만지기 위해 모든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시간이 없어 포기를 했다. 짧은 시간에 다 돌아보려면 시간에 쫓기기에... 이것이 패키지여행이라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의 모습이 선명하고






조각상의 눈이 사람의 눈을 따라 움직여 신기해서 찍어본다



우리가 타고갈 산악열차도 찍어보고


산악트래킹 코스도 있었는데 산악회에서 오면 트래킹을 많이 한다고



쪼기 보이는 전망대로 가 보기로 하고


전망대에서 바라 보기도 하고


또 다른 전망대에도 올라가 보고


이렇게 바위 절벽위에 건물을 지었으니...위대함이 느껴지고


알프스에 와 있는 기분... 오래전에 스위스 알펜 타워에서 바라보던 그 기분



쿠니풀라 등반 열차가 산의 중앙 부위에서 교차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어서 한참을 바라보고...시간이 있었다면 한번 타 보고싶었는데


쿠니풀라 등반 열차를 타고 올라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데...



다시 산악열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계획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산악 열차를 타고 내려오기로 되어있었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강하게 불어 케이블카 운행이 안된다고

  몬세라트 역에 도착을 해서 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으로 이동을 하는데...  금요일이라 차가 얼마나 많이 밀리던지

 가이드님은 시간 내 구엘공원 못 도착할까 봐 연신 안절부절못한다.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엘공원에 도착을 해서 사진부터 찍어보는데 역시 아름답다.

바르셀로나, 구엘공원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상상력과 창의적인 세계, 자연과 인간을 배려한 마음이 가득 담긴

곳. 이곳은 본래 가우디의 경제적 후원자인 구엘이 영국의 전원 도시를 모델로 대규모 주택단지를 짓기 위해 가우디에게 의뢰하여 설계된 곳이다.

구엘과 가우디는 이곳에 고급 주택 60호 이상을 지어 부유층에게 분양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곳은 돌도 많고 경사진 비탈길이어서 작업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결국 지형적 한계와 자금난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14년이라는 긴 공사 기간에도 불구하고 단지 몇 개의 건물과 커다란 광장, 예술작품 같은 벤치

정도만 남긴 채 야심찬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이 사진은 급히 구엘공원으로 들어오면서 찍은 사진

구엘공원 주차장에 도착해서 부지런히 공원 입구로 왔으나 오후 4시면 입장할 수 없다고... 버스로 이동하면서 가이드님이 현지에서 안내하는 또 다른 가이드한데

표를 구매해 놓고 기다리라고 해서 간신히 입장할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짧아(20분)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하고 간신히 사진 몇 장 찍고 말았다.

가우디의 작품




"그러나 구엘 사후 1922년 바르셀로나 시가 이 땅을 사들여 다음해 시영공원으로 재탄생시켰다. 가우디와 구엘의 이상 주택이라는 본래의 계획에는 실패했지만

이곳은 가우디의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시민과 관광객들은 예술작품 같은 공원이 주는 무한한 감동을 선물 받게 되었다고."

광장에 야자수 나무 아래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타일 벤치는 세상에서 가장 긴 벤치라고 하나하나 타일을 붙여 만든 벤치는 같은 패턴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계획성 있게 색의 조화를 고려해 만들어졌다고

가우디 건물 광장에는 세상에서 가장긴 벤치라고...끝도 없길래 인증샷도 찍고


놀라운 것은 이 광장을 거대한 돌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 평소 그리스, 로마 신전에 관심을 가졌던 구엘의 요청으로 가우디는 신전 모양의 건물을 지었는데

86개의 견고한 도리아식 기둥들이 광장을 받치는 디자인으로 설계한 것이다. 천장에도 깨진 타일 조각과 버려진 술병 등을 재활용하여 장식한 섬세함이 돋보인다.


정문 쪽을 바라보면 동화속에서나 나올듯한 건물 두 채가 있는데. 본래에는 수위실과 관리실 등 사무를 보는 공간으로 쓰려고 했다는데
지금은 기념품 숍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뾰족한 지붕과 갈색과 흰색의 멋있는 색의 조화가 눈을 즐겁게 해 주었고 내가 그곳에 있어 만화의 주인공이 된 듯...ㅋㅋ.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 아름다운 이 집에는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기에 우리는 들어가 볼 언두도 못 내보고 만다.


 또한 구엘공원의 마스코트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하수의 수호신 퓨톤을 지나칠 수 없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것 같은 퓨톤분수 앞에는

사진 촬영을 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사진도 제대로 찍을수가 없었고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다양한 색과 곡선의 아름다운 건물을 지었고 화려하고 신비한 모자이크 장식의 타일, 땅을 고르는 것도 반대할 만큼 자연그대로 집을 지었다고


아름다운 건물 또 찍어 보는데...구엘공원은 가우디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인 구엘의 이름을 따서 구엘공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직 다 돌아보지도 못했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으로 이동한다고... 나도 그러했지만 딸과 사위도 다 돌아보지도 못했는데 서운한 마음만 커지고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큰 감명을 받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한 출판업자가 바르셀로나만의 대성당을 짓자는 운동을 벌여 시민

모금이 시작되었다. 1882년 가우디의 스승이었던 비야르(F. de P. Villar)가 좋은 뜻에 동참하여 무보수로 성당 건설을 시작했지만 무조건 싸게 지으려고만 하는 교구에

질려 1년 만에 포기 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가우디를 후임자로 추천하였다. 젊은 건축가에게 맡기면 공사비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교구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가우디가 공사를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는데, 그는 비야르가 설계한 초기의 디자인을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면서 그때부터 죽는 날까지 43년간 이 공사에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쳤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직접 인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설계도를 그려 나갔고, 마지막 10년 동안은 아예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함께 숙식하면서까지 성당 건축에 몰입했다. 그러나 1926년 불의의 사고로 그는 결국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자신이 지은 이 성당의 지하 납골묘에 안장되었다. 원래 이 납골묘에는 성인이나 왕족의 유해만 안치될 수 있는데, 로마 교황청에서 그의 신앙심과 업적을 높이 사서 허가해 준 것이다."


이 건물은 가우디가 생전에 지은 건물이고

"그의 사후, 스페인 내전 과정에서 설계 도면이 불에 타 사라져 공사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의 정신을 계승한 후배 건축가들의 기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성당의

건축은 계속되었다. 오로지 기부금과 입장료 수입만으로 공사 비용을 충당하고 있어 착공된 지 130년이 넘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언제 완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건물은 가우디 사후에 지은 건물인데 지금도 계속 짓고 있다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총 3개의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가 있는데, 각각 ‘예수 탄생’, ‘예수 수난’, ‘예수 영광’을 주제로 설계되었고, 이 중 ‘예수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생전에 직접 완성시킨 것이다. ‘예수 수난’ 파사드는 1976년에 완공되었고, 마지막 남은 ‘예수 영광’ 파사드는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3개의 파사드 위에는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이 세워지고, 중앙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탑이 세워질 계획인데, 현재까지는 8개의 종탑만 완공되었다."

내부로 들어가 보는데..."내부는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것처럼 나무와 꽃들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기존의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아름답게 빛난다. 내부가 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미사를 여는 데는 지장이 없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다. 종탑은 걸어서

오르거나 유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수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 풍경도 인상적이다. 날이 좋으면 먼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예수 수난’

파사드 화장실 방향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건축 과정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 있으니 시간 여유가 있다면 놓치지 말자.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하루 종일

줄이 줄지 않을 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찾기 때문에 가능하면 오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기둥 하나하나가 인간의 뼈를 형상화하여 만든 거라고



내부를 관람하면서 사진 몇장만 찍어와 올려본다.  가우디는 성당에서 집으로 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다쳤는데 행색이 워낙 초라해 거지인 줄 알았다고
그래서 지나가던 행인들도 그가 가우디인 줄 몰랐다고 만약 그대로 방치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일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성당을 관람하고 기념품 숍에 와 보니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이 완공되면 4면이 이런 모습이라고

화려한 인생을 살진 못했지만 화려한 건축물을 남긴 가우디...오늘날 우리는 가우디의 건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을 돌아보고 나오니 어둠이 밀려와 야경이 아름답기에 찍어보고

 

석식을 하고 야간투어를 시작한다 (1인 50유로)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며 구시가지를 돌아보는데... 2시간 정도 구시가지를 도보로 이동하면서 거리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설명해 주는데  

몇 백 년째 이어온 장인들의 가게도 설명해 주고



바르셀로나에서 매년 카탈루냐 사람들이 독립선언을 한다고... 자세히 들어보니


지도에서 화살표 방향...바르셀로나

우리에게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황영조 마라톤 금메달 획득 하이라이트 로 우리에게 알려진 바르셀로나 그곳에서 카탈루냐는 왜 독립하려하는가?

카탈루냐 지역은 오랫동안 독립적이며, 민족적인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900만 명이나 되는 지역사람들은 아직도 역사와 언어까지도

예전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돈 문제다. 카탈루냐 지역은 부유한 곳으로 스페인 지역 총생산(GDP)의 18-20% 차지하는

스페인 경제에 기여도가 매우 높은 곳이다. 그런데 중앙 정부는 카탈루냐에게는 높은 세율로 세금을 걷고, 낮은 예산 편성과 지원에 소홀하였다. 스페인 전체

세금의 약 19%를 맡고 있는데, 예산지원(돌려주는 것)은 9.5% 인 것이다. 이유는 낙후지역인 카스티야 지방에 카탈루냐 주민들이 낸 세금의 10~15%가

지원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카탈루냐 사람들은 낙후지역 때문에 희생(착취, 부당한 대우)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중앙정부의 차별로 인해 그 동안 쌓였던

불만이 터져 독립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왜 같은 나라인데 잘사는 사람(지역)이 못 사는 사람(지역) 지원해주는 게 싫은가? 그건 민족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일 민족은 민족애라는 것이 있는데 그들은 민족애가 없다. 자신들이 다른 민족 때문에 희망당하는 것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민족들끼리의

감정은 얼마나 컸을까? 짐작해보면 예상할 수 있고, 특히 축구에서도 얼마나 라이벌 구도가 큰지 마드리드와 바로셀로나(카탈루냐 지역) 경기는 전쟁에 가깝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 지역과 문화적 통일과 융합을 못해 나라 안에 다른 나라를 키웠고, 차별에 대한 조율을 하지 못해(무시해), 감정은 커지고

그것이 독립으로 표출된 게 아닌가 한다.

카탈루냐의 독립가능성?
카탈루냐는 독립은 스페인 정부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주변국가와도 연관성과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강대국들(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은 카탈루냐

독립을 반대하고 있다. 또한 EU연합도 복잡해지고 어려운 사항을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분은 유럽 국가들은 EU의 회원국으로 카탈루냐가 만약 독립을 하게

되면 자동으로  EU 탈퇴가 되면서, 다시 EU에 가입을 요청할 것이고, 스페인은 그걸 막아, 유럽에서 카탈루냐를 고립시킬 것이다.

또한 유럽에는 많은 연방국가들이 있고 그 국가들은 독립단체의 압력에 골머리를 아파하고 있는데 이를 계기로 독립확산 운동이 유럽 전역에 퍼진다면,

심각한 유럽문제로 발전되는 것을 EU와 강대국들은 원치 않을 것이다. 유럽은 세계 1, 2차 대전으로 잿더미가 되었다가 힘들게 성장하였는데,

다시 혼란스러운 유럽은 주변국 또한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시청 건물도 지나가고

왕의 광장...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을 알현했던 장소
고딕 지구의 심장과 같은 곳으로, 콜럼버스가 첫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 이곳에 있는 14개의 계단에서 이사벨 여왕을 알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세 때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3면이 건물로 에워싸인 광장이라서 음악의 울림이 좋아 거리의 악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면에 있는 건물이 아라곤 왕의 왕궁이라고


이렇게 구시가지를 투어하고 신시가지로 가 보는데



역시 아름다운 신시가지... 이곳에는 유명 메이커가 다 모여 있어 쇼핑도 하고 싶었지만... 그냥 바라만 보고

이렇게 바르셀로나의 여행은 이곳에서 마무리 하고 호텔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