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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만 즐겁게 살자.
경기도 산행

남한산성 으로...

by 미소.. 2017. 11. 28.

26일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짙은 안개가 내려앉아 산에도 못 가고 있는데

11시쯤 서서히 안개가 걷히길래 남한산성으로 가본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은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 있는 산성. 병자호란 때 조선의 16대 왕 인조가 청나라에 대항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5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공원화된 후 현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이곳에서 40여일간 항전하였으나 결국 성문을 열고 항복한 곳으로 유명하다.

1963년 1월 21일 남한산성의 성벽이 국가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고, 2014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산성을 한바퀴 돌기로 맘 먹고 출발...코스: 북문=동문=남문=서문=북문 (원점회귀 산행)


북문( 전승문) 을 지나가면서...

"성곽 북쪽의 해발 365m 지점에 있으며, 전승문이라는 명칭은 1779년(정조 3)에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하고 지어진 이름이다.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인데 현재 편액은 걸려있지 않다. 무지개 모양의 홍예식 문이며, 홍예기석 위에 홍예돌 10개를

쌓아 구축하였다."

 북문(전승문)을 지나 동문쪽으로 가면서...오후라 그런가 산꾼들이 별로 없다.


 

제 1군포터 를 지나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단풍이 곱게 물들었을 남한산성... 지난밤 비가 내려  빛바랜 단풍잎이 선명한 빛으로 다가오고


 한적한 산성길을 따라가는데...


 산성을 따라가다 숲 속길로 접어든다. 산성 둘레길은 올 때마다 거닐었길래 오늘은 낙엽 쌓인 숲 속길로 접어드는데

고운 단풍은 낙엽 되어 쌓이고...

 추풍에 떨어진 낙엽 그 생명의 허무함이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데...낙엽, 그 이름만큼 시적이고 낭만적인 것이 또 있을까

마음가지 끝 빛 바랜 잎새들이 오래된 집착과 애증과 연민을 두고 이제는 안녕 이라고 하네.

바위 위에 앉아 따끈한 차 한잔을 마시며 떨어진 낙엽을 바라보는데  그 순간 지난 추억들이 밀물처럼 밀려드는데...ㅋㅋ

학창 시절 갈잎 끌어모아 서로에게 던지면 놀던 추억... 찬바람이 쌩쌩 불던 겨울 바닷가 해변을 누비며 깔깔대던 추억들이 생생하게

스쳐지나가는데... 나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들이 많았었는데...차한잔의 여유를 느껴보고 인증샷도 하나 찍고...또 다시 출발...


제 3암문도 지나고...


 또다시 숲길로 접어들고...


 동장대터도 지나고...


 동장대터를 지나면서 공사중...동문(좌익문)까지 공사중이라 우회하라네...


 공사 중이라 성벽을 따라 등산할 수는 없고  계속 이어지는 오솔길따라 내려오다 보니 장경사 가...


 장경사를 둘러보고...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더불어 도성(서울)을 지키던 산성으로 장경사는 남한산성을 지을 당시인 조선 인조 16년(1638)에 세웠다.

전국8도의 승려들을 모집하여 산성 짓는 것을 도왔는데, 이때 승군(僧軍)들이 훈련을 받으며 머무르던 9개의 절 중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절이다.절에 있는 건물로는 대웅전, 진남루, 칠성각, 대방, 요사채 등이 있다.


장경사(長慶寺)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내에 위치한 사찰이다. 남한산성 동문에서 북쪽으로 2km가량 올라간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남한산성 안에는 본래 9개의 사찰이 있었는데, 현재 장경사, 망월사, 개원사, 국청사 등이 복원되었고 나머지는 소실되었다.

장경사는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장경사를 지나 망월사로 이동...


 지금 한창 공사중...


  동문에서 동장대 까지 지금 공사중...


 망월사로 가는 길목에도 단풍잎이 조금씩 퇴색되어 가고... 조금만 일찍 왔으면 고운 단풍길을 거닐었을 텐데... 아쉬움이



망월사, 장경사로 가는 삼거리 도착... 바로 위에 망월사가 있는데 남편은 예전에 들려 봤다고 그냥 동문으로 가잖다  

할 수 없이 망월사는 쳐다만 보고 그냥 동문 쪽으로 내려간다


 동문으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아직 남아 있는 고운 단풍잎이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더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동문(좌익문) 도착을 한다.

산성의 남동쪽에 있는 문. 좌익문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왕이 행궁터를 중심으로 남쪽을 보고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동쪽이 왼쪽이

되어 그렇다고 한다. 남문과 함께 사용빈도가 가장 높은 문. 동문은 일반 성돌에 비해 덜 가공된 약 2배 정도 크기의 성돌을 사용하여

쌓았다. 다른 문에 비해 낮은 지대에 축조했기 때문에 성문을 지나는 길에 계단을 만들었으며, 우마차의 통행이 불가능 했다. 따라서

물자의 수송은 수구문 남쪽에 있는 11암문이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동문(좌익문)을 지나 남문(지화문)으로 가면서 다시금 동문을 바라보고...공사중이 아니였으면 바라보이는 성벽을 따라 산행 했을텐데...


 남문이 1,7 km 라네...부지런히 산을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헬기가 산불예방하고 안전산행 하라고 방송을 하고...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데 비해 안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 했을것 같고...그 옛날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텐데

 성을 쌓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고...


 

  팥배 열매 가 맛있게 익어 산새들의 먹이가 되어주고


 

 남장대터가 있는곳을 지나고...



 옹남성 뒤로 성남 검단산도 바라보고...


 줌을 살짝 당겨 성남 검단산을 찍어보고...헬기가 산성 한바퀴 돌고 검단산으로 갔네...


 산성을 따라 룰루랄라 가는데 어디선가 딱따구리가 나무 쪼아대는 소리가 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귀여운 딱따구리가...



 남문(지화문)을 지나고...성의 서남쪽 곡저부의 해발 370m 지점에 있다. 왕이 다니는 문 답게 4대문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

인조도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으로 들어올 때 이 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지금의 문루는 1976년 화강석 장주초석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주초석 대부분을 새로 보충하여 복원하고 현판을 단 것이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동문에 비해 비교적 그 규모가 크다.

 가던길을 멈춰서서 지나온길을 바라보는데...멀리 성남 검단산도 바라보이고...


 영춘정을 지나...

  롯데월드타워 가 눈앞에 펼쳐지고...




 양지쪽에 모여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


(수어장대) 로 들어가 볼꺼나...


수어장대

남한산성에 있는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성 안에 남은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이곳은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

목적으로 지은 누각이다.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축성 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 27년(1751)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守禦將臺)’라는 편액을 달았다. 수어장대 2층 내부에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하여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다. 현재 무망루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다.


 계절을 잊은듯 피어있는 개나리...



서문(우익문) 도 지나고...

경사가 급하여 물자를 이송하기는 어려웠지만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리고 인조가 소현세자와 함께 서문을 통해 청나라 진영으로 가서 화의를 맺고 항복을 하기도 했다.

 서문을 지나 전망대에서 남산타워와 롯데월드타워도 바라보고...하루종일 연무현상 인지 미세먼지인지 시야가 영...


멀리 한강쪽도 바라보고...

 남한산성은 이렇게 소나무가 멋지다.

 쉬엄쉬엄 산행하다보니 북문에 도착...여기서 원점산행 끝...


 산성을 한바퀴 도는데 7,7 km ...220분 소요 된다나...


 

 사진 전시회도 하길래 둘러보면서 겨울 눈 내릴 때 오면 좋겠다 싶어 한 장 찍어보고... 

행궁 지난번에 가 보았기에 이번에는 밖에서 그냥 바라만 보고.
행궁 구조도...사적 제480호이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20개소 정도의 행궁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남한행궁은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두었다.

(좌묘우사) [8]비상시에 예비 수도로서의 기능을 하였기에 필요한 시설을 모두 갖추어 놓았다. 원래 건물은 상궐 72.5칸, 하궐 154칸으로 모두

 226.5 칸의 규모였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헐어버려 터만 남아있어 복원 중이다. 2002년에 내행전을 비롯하여 일부 부속건물들을

복원했다. 부속건물로는 재덕당[9], 내행전[10], 남행각[11], 북행각[12], 좌전[13], 좌승당[14], 외행전[15], 일장각[16],

한남루[17] 등이 있다.

 남한산성 주변 음식점들은 이렇게 전통가옥으로 ...고즈넉한 분위기 미소 좋아하는디...카페에 들려 차도 마시고 맛난 저녁도 먹고 왔으면

좋으련만...낭군님 빨리 집으로 가자네...이렇게 일요일 오후 남한산성 에서 등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