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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글

바람의 일


 

바람의 일 / 공 인 숙

 

오랫동안 바람을 사랑했습니다
바람만큼 외롭고 쓸쓸한 건 이 지상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들녘에서, 포구에서, 노을 비껴 가는 강가에서도
언제나 안녕하며 내 마음을 쓸어줍니다
바람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습니다

 

다만, 살구꽃이 눈부신 날
할머니 무릎베개에 옛 이야기 듣는
아이의 눈꺼풀을 힘겹게 하는 것도,

 

깊은 우물 속 맑은 물 위에
꽃잎의 연서를 날리는 것도
산 그림자가 마을로 내려오게 하는 것도
다 바람의 일이지요

 

또한 종아리가 유난히 예쁜 산골 계집아이의
상고머리를 산당화의 향기로 흔들어 주는 것도

바람의 일이고요

 

길섶에 피어난 쑥부쟁이의 꽃대를
한두 번 흔들어 보기도 하다가 그저 슬몃…

오늘은 비가 내렸습니다

 

이 빗물을 바다로 보내
파도를 보며 영혼을 키우는 누군가에게
한 점 살이 되게 하는 것도
바람의 일 일겁니다

 

수 없는 바람이 수많은 별이 될 때까지
바람을 사랑하겠습니다